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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균(1980)
l 1980년 서울 출생 41세(만40)
l 셋 아이의 아버지
l 임재범-임창정-임시완과 같은 풍천 임(任)씨
l 現 한국대필작가협회 협회장 / 대필작가 겸 출판기획자
<대필 작가 임재균>
- 언제부터 대필 작가로 일하셨나요. 다른 일을 해보신 적도 있나요.
제 삶은 30세를 기준으로 나뉩니다. 서른 살 이전에는 회사원,. 서른살 이후에는 대필작가 입니다. 시기상으로 2010년부터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대필 작업을 했지만, 전업을 기준으로 2010년입니다. 30살까지는 이것저것 정말 많은 일을 해봤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학생시절 20대에는 성적에 맞춰 진로를 정하다 보니 삶이 솔직히 꿈은 없고 그냥 놀고 싶거나 돈은 벌어야 하니 취업은 하고 싶었습니다. 문과에다가 그때나 지금이나 취업은 만만치 않아서 20대까지 공장노동자, 막노동, 영업직, 컨설팅회사직원, 무역회사직원, 준공무원, 엔지니어, 프랜차이즈 영어학원 직원, 프리랜서작가, 중국어학연수까지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은 거의 다 해본 것 같습니다. 어쩌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더니 시키는 것만 잘해야 하더군요. 월급과 주말만 기다리는 회사원 생활보다는 내가 잘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대필작가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그때 처음 대필작가세계를 알게 되었고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대필분야가 미개척지라고 확신하여 이 분야에서 아예 이 분야의 일가를 이루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가 31세입니다.
-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대필하셨나요.
출간 서적 50권 외 비간행본 등이 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칼럼, 자기소개서, 편지, 인터넷에 올리는 다양한 글, 기업체 홈페이지 문구, 마케팅 홍보문구, 광고에 들어가는 다양한 컨셉의 글, 기업체CEO신년사등 장르나 종류를 구분할 수 없는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 대필했습니다.
- 대필 작가로서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A> 오전6시에 일어나 잠깐 기도 한 후 이메일과 메신저 체크, 스케줄 체크한 후 밤새 미국경제동향과 한국경제동향, 동향, 신기술 동향...등등을 살펴봅니다. 이후 오전에 그 동안 썼던 글을 다시보고 구상에 잠깁니다. 오전에 아이들 유치원에 보낸 후 잠깐 운동 후, 출근하여 점심식사까지 열심히 일합니다. 식사 후 다시 일하고 작가님들과 함께 zoom회의도 하고, 협회내 행정적인 일을 처리한 후 저의 집필 작업을 합니다.
저녁에 다시 운동 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식사를 한 후 10시30분까지 아이들과 함께 보냅니다. 이후 또 11시정도까지 잠깐 집필을 합니다. (2살 딸, 7살 아들, 9살 딸 이렇게 아이가 셋입니다) 취침 전 잠시 운동을 한 후 다시 11시전에 잠자리에 들기 1~2분분정도 명상 좀 하고 일기 쓰고 잠듭니다. 30대까지 9시취침, 새벽2~3시경에 일어나 글쓰기 생활을 했습니다. 제 인생 최초로 한 4~5시간만 자고 일했던 것 같습니다.(사실 학창시절에 공부도 이렇게 안 했습니다) 평일 루틴은 대부분 동일합니다.
- 대필 작가의 원고료는 보통 얼마나 되나요. 작가 분들 마다 편차가 클 것 같아요.
A> 대필 작가는 상업적인 작가 입니다. 글이 곧 수입으로 바뀌는 집필을 합니다. 따라서 수입 편차가 매우 큽니다. 이름을 내세우기 힘든 초보작가님들의 경우 연봉 1,000만원 이하가 될 수도 있고요, 경력이 쌓이기 시작할 때 월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대필작가는 회사원이 아니며 공무원이 아닙니다. 정해진 월급이란 것이 없습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하나 들고 ‘글쓰기’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서바이벌 무대입니다. 저 역시 초창기에는 매우 적은 비용을 받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경력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일감을 받아야 하는게 무경력자의 피할 수 없는 비애입니다만 차츰차츰 경력이 쌓이면서 이름도 조금씩 알려지고, ‘저한테 맡기면 확실하다’는 평판이 생기면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다.
얼마를 버느냐고 아니라, 내가 얼마만큼 신뢰성 있게 활동하며 글을 생산해내는지 의지와 지구력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베스트셀러 냈다고 내년에도 베스트셀러를 낼 거라는 보장이 없는 직업이 작가입니다. 대필 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집필 계약을 많이 했다고 내년에도 집필 계약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글쓰기를 주업으로 하는 1인기업 혹은 지식자영업자라고 할까요. 유형의 상품인 치킨 대신 무형의 상품인 글을 판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작가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끊임없이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작업에는 인내와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수입이 많아도 내일 수입을 염려해야 하는 자영업자의 생존 법칙을 떠 앉고 무형의 글쓰기 서비스, 예술성을 같이 생각해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작업 법칙을 동시에 염두 해야 합니다.
대필작가의 일은 원래부터 비대면, 온택트 방식이었기에 코로나사태 때문에 일하는 방식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습니다. 대필작가야말로 비대면, 재택근무, 원격근무의 원조직업입니다. 지금은 사무실을 줄여 기존 일하던 방식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zoom이나 메신저를 통한 집필도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회귀중입니다 또한 굳이 종이 책만 대필의 영역이 아닌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영역이 대필의 영역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오히려 수입이 늘어나신 작가님들도 많습니다.
- 에세이, 자서전, 자소서, 편지 등 대필 작품의 종류가 다양한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주로 어떤 글을 대필하시나요.
저는 제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에세이, 자서전, 회고록, 편지, 칼럼, 기업 사사, 백서, 연설문 장르 불문, 경제경영,…등도 써왔습니다. 심지어 4차산업혁명 블록체인 분야와 4차산업혁명과 동떨어진 기독교, 무속신앙처럼 상반된 것도요. 수준으로 치면 부끄럽습니다. 저는 잘 못쓰지만, 더 못 쓰는 분야는 소설분야입니다. 스토리텔링 능력에 대한 천부적 재능, 그리고 예술적 감수성이 충만해야 하는데 저는 그게 부족합니다 제가 작가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저는 협회를 조직했습니다. 협회 안에는 천재적인 작가님들, 분야별로 특출난 작가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깜짝 놀랄 정도의 재능을 가지신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협회장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글을 제일 잘 써서가 아니라, 제일 못해서 입니다. 협회 안에는 정말 훌륭한 작가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개인의 지능과 재능, 그리고 능력에는 늘 한계가 있습니다만, 개인이 일하면 티끌모아 티끌인데, 협회로 일하면 티끌모아 태산도 만듭니다. 분야와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저는 이렇게 능력 있는 작가님들의 힘을 빌려왔고 재능 충만한 작가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 기억에 남는 대필 작업이나 특이한 대필 의뢰가 있을까요?
대필 작업은 대부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인들이라면 절대로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죠. 마치 영화 <포레스토검프>처럼 만났던 분들은 시대의 한 획을 그어 나가신 분들은 물론 사회의 이념과 정치, 신분의 고저, 분야의 종횡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한때 국내 경제계를 호령하던 기업의 회장님 일가, 엄청나게 유명한 목사님, 큰손 사채업자, 강남 주식 전문가, 정치권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구속당하신 정치인, 현대 순수미술분야의 열정적 미술작가, 연예인, 거대 모 기업의 비리를 어마한 폭로하겠다던 분, 모기업 창업주, 박정희 정권 시절 빈손으로 캐나다에 이민 가셔서 현지 중견기업의 창업자가 되신 분, 통일운동에 평생 몸 바치신 국정원 요주의 인물 운동권 인사, 삶의 마지막 의지로 구술작성하신 글 모르시는 의뢰자 할머니..
개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필은 6.25-이승만-박정희 정권 이어 6~70년대와 한국근현대사를 몸소 체험하신 분의 이야기인데, 이민 1세대로 빈손으로 캐나다에 가셔서 막노동, 경비, 택시운전사로 일 하시다가 안경판매사업을 하셨고 나이지리아 국제 사기단 이메일 피싱에 속아 나이지리아에 납치되었다 간신히 탈출한 독특한 경험에, 급기야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를 겪으며 그나마 일군 회사가 밑바닥까지 쫄딱 망한 후에 마지막 승부수로 던진 하찮은 이쑤시개 장사로 오뚝이처럼 일어나 북미시장의 중견기업의 창업자로 남았습니다.
한때 북미 스타벅스 시장의 60%를 납품하셨던 한인 사업가이십니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45년이상 살아오시며 한국 현대사 이야기 속에 산전수전을 직접 겪은 내용이니 얼마나 이야기가 많겠습니까... 당시 자료인 일기, 사진, 여권 등을 토대로 하나씩 보고, 국제전화 인터뷰, 이메일 회신, 메신저 자료교환, 구글docs를 활용해 저는 한국에서 집필하고, 의뢰자 분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인터뷰해 주셨습니다. 한국과 캐나다 밴쿠버의 시차가 안 맞다 보니 캐나다 밴쿠버 시간에 맞춰 새벽2시부터 인터뷰를 통해 수개월 집필을 해서 책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분이 망했다가 오뚝이처럼 몇 번을 다시 일어나시는 인생의 실화를 스토리로 정리하면서 대필작가이기 전에 한 집의 가장이자 아빠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실패로 얼룩진 쓰디쓴 인생을 대하는 포부와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 직접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있으며 저는 이분을 인생의 멘토처럼 여기며 이분도 저와 저의 일을 격려해주시고 계십니다, 코로나로 뜸하지만 1년에 한번씩 뵙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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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우선 책 대필은 일명 MSG(일부러 꾸미는 이야기)가 많은 게 보통입니다만, 이분이야기는 MSG가 필요 없었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대필 작가인 저를 매우 인격적이며 전문적 작가로 대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보통 하대하는 것이 일반적 정서였습니다) 그리고 대필한 책에는 대필 작가의 이름을 빼 버리는 게 한국내의 정서이고, 원고료도 깎던가 안 주려고 하는 상황에 맞서야 하는 것이 한국의 대필 작가가 처한 운명이라 저는 그것을 경험상 예상하며 대응 시나리오까지 구상했는데, 이분은 계약서에 적힌 정해진 기일에 맞춰 정확히 보내주셨고(그것도 국제송금으로!) 원고료를 억지로 깎으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또한 이 분은 대필 작가인 제 이름을 스스럼없이 책에 넣어 줬습니다. 게다가 출판기념회에도 불러 제가 작성해주었다고 초청하신 손님 분들에게 저를 호명하여 극찬까지 해주셨습니다.
훗날 제가 이 분께 거꾸로 제가 여쭤봤어요. 이렇게 이름을 넣어도 되는지, 그리고 왜 원고료를 안 깎으시는지 말이죠. 그분이 대구분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미국에서는 다 계약서 대로 이렇게 하는기라! 한국이 이상한기다. 일시켜뿔고 계약대로 돈도 안 주는게 한국사람들 특기인기라, 내도 사업하며 많이 당했다!”
이분을 통해서 고스트 라이팅의 북미 방식, 서구사회의 선진 대필 문화를 오히려 대필 작가인 제가 처음 직접 느낀 경험이 되었고, 협회에서는 불공정관행들을 개선해보려는 동기로 작용했습니다. 심지어 계약서도 없이 집필하는 대필문화, 출판문화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선진적인 고스트 라이팅 문화, 양성적인 대필 문화를 한국대필작가협회를 중심으로 만들어보자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 평범한 작가가 아닌 대필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하는 대필이 항상 전문적인 분야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안되던 일도 저한테 맡기면 잘 마무리 지었으니까요. 작가라는 직군은 있는데 ‘대필작가’라는 직업적 카테고리는 없었기에 이 길을 내가 개척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도 성경을 직접 쓰시진 않았습니다. 석가모니도 불교경전을 직접 쓰시지 않았습니다. 뭐 성인들이 대필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만큼 누군가는 남의 이야기를 쓸수밖에 없다는 뜻인데, 이렇게 유래와 역사가 긴 직업이 아직도 직업적인 지위가 없다는 사실에 저는 흥분했습니다.
회사다니면서 고 구본형 작가님의 <익숙한 것 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그리고 다니엘 핑크의 <프리에이전트의 시대> 를 읽고 지금은 산업화 시대가 아니며, 직업으로 공무원, 회사원이 전부인 시대는 아니라 직감했습니다. 회사원이 아닌 전문직으로 나만의 독창적인 분야를 만들고 싶었는데 보기 좋게 적중한 것이 ‘대필작가’였고 ‘대필작가’는 저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2012년도인가 당시 스마트폰이 처음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시대적으로 4차산업혁명이란 말이 처음 나올 즈음 이었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서적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뜻밖에 이론 물리학계의 세계적 석학 ‘미치오 카쿠’의 <불가능은 없다>, <미래의 물리학>을 보면서 앞으로 10년후, 20년후 내 인생을 회사에만 걸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등단->작가 라는 직업적 공식에 따를 필요가 없으며, 기존직업이 신생직업에 역전 당할 것이라는 생각했어요. 진짜로, 12년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미약했던 유튜버, 1인크리에이터, 웹소설가, 웹툰작가 등 1인기업화된 분들이 기존직업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대필작가도 직업의 한 카테고리로 주목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필작가의 1인작가 한계를 뛰어넘고, 직업적 ‘스탠다드’ 를 세우기 위해서 협회를 조직하고, 계약서도 없이 음성적으로 대필하다가 문제 생겨서 잠적하는 일들이 횡행하던 시절에 정식계약서를 갖춰 집필했으며, 반드시 기간 내에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등 시장성내에서 신뢰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었으나, 세상의 변화 때문에 다양성이 존중 받는 시대를 잘 만나서 아직까지 대필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필작가 임재균, 그리고 대필작가협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인터넷도 없던 1980년대 30대를 맞이했다면 대필작가협회는커녕 대필작가라는 이름자체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을지도 모릅니다. 기회의 시대를 제가 살고 있는 것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5r9HlAEmY6c
- 얼마전 유튜브 채널 ‘할명수’에서 개그맨 박명수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에피소드가 화제였어요. 어쩌다 대필하게 되셨는지?
방송국 작가님께 섭외 연락이 받았습니다. 우연히 말이죠. 사실 예능에 출현한다는 것이 고민 많았습니다. 말주변도 없고, 작가라는 직업은 그렇게 비주얼한 직업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가처럼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 만나 인터뷰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해서 키보드 두드리는게 전부니까요. 여러 가지 얽힌 소재가 많아서 다큐멘터리, 논픽션드라마, 영화라면 모를까 예능으로 뭘 보여줘야 되나 엄청나게 고민 많이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동안 미디어에서 인터뷰했던 것이 전부다 어두운 내용이었습니다. ‘대필작가’라는 이름의 이미지 때문인지 고스트라이터, 유령작가, 대필작가는 범죄영화나 스릴러물, 심지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소재물로 쓰일 정도입니다. 이참에 대필작가에 대한 일반적 편견인 어두 칙칙한 이미지를 깨고 싶어 무리수(?)를 두어 ‘할명수’ 자서전 대필 작업 에피소드에 참여하였습니다. 대필작가는 생각보다 명랑하고 즐겁고 유쾌한 직업입니다. 단지 표면상에 드러나지 않아서 오해가 있을 뿐인데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방송에서 “히트작이 없으면 대필작가”라는 농담을 하셨는데요. 짧은 해명을 부탁드립니다.ㅎㅎ
해명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말 때문에 돌을 많이 맞았습니다. 예능 특성에 맞춘 애드립 입니다. 웃자고 한 말입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습니다. 히트작이 없는 사람은 저 밖에 없습니다. 협회에서 제가 제일 실력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활동하시는 대필작가님들은 히트작이 많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님들도, 문단내 등단작가님들도 생계문제 때문에 대필을 할 뿐입니다.
- 실제로 일반 작가와 대필 작가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작업방식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일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내지만, 대필 작가는 1:1 맞춤 양복을 만들 듯 다른 분들에게 맞는 글을 써주는 작가입니다. 대필 작가의 작업 대상을 확대하면 개인에서 연예인, 정치인, 기업, 정부기관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대필작가에게는 계약된 클라이언트가 있다는 점이 차이일 것 입니다.
- 대필작가에 대한 편견은 ‘받아 쓰는 작가’라는 것인데요. 최근의 박명수 자기계발서를 보면 기획에 가까운 역할부터 전부 하신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대필 작가는 절대로 받아 적는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받아 적으면 100% 망합니다. 받아 적는 일은 제가 안 해도 요즘 기술이 좋아서 Speech-to-Text라고 인공지능이 받아적기를 대신해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Google의 머신 러닝 기술에 기반한 API를 통해 40개가 넘는 언어 및 방언을 지원하는 220여 개의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텍스트를 변환해 주기 때문에 저보다 Google이 받아 적기를 정확히 잘합니다.
하지만 대필 작가는 사람의 감정과 뉘앙스를 포착하여 분절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을 흘려 듣지 않고 이해하여, 목차를 정하고 구조화한 후 읽고 싶은 이야기로 만드는 작업을 해줍니다. 기획자역할과 작가의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정리할 때 받아적기는 Google Speech-to-Text에 이용합니다.. 12년전에는 없던 기술이죠. 대신 대필작가는 인터뷰 질문과 답변, 대화, 소통을 통해 감정, 정서적인 뉘앙스, 영적인 감각까지 포착합니다. 이것을 나중에 책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이것은 Google보다 인간이 더 뛰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인공지능의 특이점시대가 도래해도, 대필작가는 그저 살아남는 직업이 아니라, 받아쓰기 같은 잡무에서 벗어나 더 특별하고 독창적인 직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필 작가는 무슨 일을 하는가>
- 1권의 대필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의뢰에서 출간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인터뷰작업작업이 포함됩니다. 또한 자료분석과 정리도 필요합니다. 보통 2~4개월정도가 소요됩니다. 매우 복잡한 작업은 6개월~1년까지도 소요됩니다. 책의 핵심인 원고가 작성되면 그 다음은 출판 프로세스에 따라서 표지, 내지 디자인을 거쳐 전국서점에 배포됩니다. 정식 배포의 경우 출판 프로세스를 따라 ISBN이 등록된 책으로 출판되나 비정규간행물일 경우 그냥 제본소에서 출력하며 유통은 생략됩니다. 최근에는 원고의 내용보다 책 디자인에 더 신경 쓰는 흐름이 있습니다. 비주얼한 책, 디자인요소도 무시 못할 영역이 되었습니다.
굳이 종이책이 아니라, Amazon 같은 경우는 ebook 콘텐츠로 제작하여 곧바로 시장에 유통시키거나, 웹소설 플랫폼이나 각종 인터넷매체를 통해서 기존 종이책으로 만들어 유통까지의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달해서 독자반응, 구독자수, 실시간으로 확인가능하죠.
- 과거 인터뷰에서 “시중에 출판되는 책 10권 중 6권∼7권은 대필 작업을 거친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정말 대필 시장의 규모가 그 정도로 큰지 궁금합니다
대필시장은 무한확장하고 있습니다. 대필이 이제 종이 책만 의미한다고 보시면 안됩니다. 최근에는 유튜브등 새로운 미디어에서 대필수요가 많아집니다. 한마디로 집필의 한 분야로 자리잡힌것입니다. 굳이 책으로 한정 지어보면 최근 책 쓰기 강좌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강좌를 들은 6주만에 혹은 원데이 강좌를 듣고 책 쓰기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마지막은 대필로 귀결됩니다. 6주만에, 하루만에 책 쓰기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마케팅의미가 포함된 수사적 표현일뿐 결론은 대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소출판사들이 저마다 책 쓰기 강좌를 통해 책을 출간했다면 대필작가의 손이 갔다면, 대필작가의 손을 거친 책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대필은 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대기업-일반기업에서도 모두 필요로 하는 분야입니다. 책쓰기나 글쓰기는 회사의 주 업무와 전혀 다른 문제라서 책 쓰고 정리하는 전문가들을 필요로 합니다. 규모불문하고 잡지사, 출판사, 마케팅 회사 까지도 모두 대필작가를 못 구해 안달입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정치인선거, 5년마다 돌아오는 대선 정치인들의 선거캠프는 모두 대필작가를 필요로 합니다. 물론 대필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만. 원 저자가 쓴 초고일 경우 대부분 원고를 다듬어야 출판시장에 내놓을 만한 수준으로 탈바꿈하게 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하기에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출간직전에 저 같은 대필작가들이 다듬어 원고를 재탄생 시키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필을 의미하는 책이라기 보다는 대필작가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원고를 작품성 있게 끌어올리기는 분업화 과정을 거칩니다. 폭넓은 의미로 볼 때 대필작업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필이 이처럼 무한팽창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필 작가의 이름은 책에 실리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이유가 뭘까요?
한국 특유의 체면문화 때문입니다. 북미권도, 유럽권도 대필작가는 모두 엄연한 전문직으로 원저자와 함께 이름에 실립니다. 하지만 한국은 특유의 체면문화가 있어서 대필이라는 어감자체에서 오는 미심쩍음, 대필에 의한 체면 구김이 발생할까 하여 양호하면 ‘기획자’이란 이름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만 대필작가라는 명칭으로 들어가진 않습니다. ‘대필’이라는 부정적 때문에 대필작가 용어는 책에 안 쓰는게 관행이고 저 역시 억지로 넣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매우 불만이었지만, 오랫동안 굳어진 문화이고 이것이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 것이므로 저는 유쾌하고 즐겁게 이 사안을 즐기고 있습니다. 대필문화는 점차 양성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시간은 우리편입니다.
- 집필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들, 이를테면 저자의 갑질이나 불공정계약, 집필 내용에 관련한 불합리한 요구 등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습니다. 가장대표적으로 원고료 후려치기가 기본입니다. 원고를 다 썼으나, 원고료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오타 몇 개가 있다는 이유로, 수정을 거부한 채 비용지급을 거부하는 경우 소송으로 가기도 합니다. 실제로 협회 내 상당한 경력의 작가님의 원고는 누가 봐도 출판에 적절한 수준 있는 글을 썼지만, 최종원고를 받아놓고 계약자가 자기마음에 안 든다는 주관적인 이유로 원고료 지급 거부하여 지금도 소송 중입니다.
심지어 여성작가의 경우 남성 의뢰자로부터 인터뷰를 빌미로 술자리 동석요구도 빈번합니다. 황당하지만, 여성작가를 자신의 집 빈방에 머물면서 글을 써달라는 상식 이하의 제안도 들어옵니다. 사안이 심각하죠. 얼마 전까지는 협회가 불공정 계약건에 대하여 처리를 하려고 도와주시는 변호사, 노무사분의 자문을 받아왔으나 지금은 한국예술인재단 예술인신문고 같은 제도권내의 힘있는 기관에서 이 업무를 해주시기에 저희가 한결 큰 짐을 내려놨습니다.
정치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 보좌관 비서관 채용 해 줄 것처럼 말하면서 일을 다 시켜놓고, 선거 끝나면 모르쇠로 일관하며 원고비용지급을 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캐나다국적의 의뢰인께서 “계약해놓고 돈을 안주는 한국사람이 이상한 거야!”라는 말이 이해됩니다.
- 대필 작가를 부업으로 하는 분들도 많으신가요?
대필의 영역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부업으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신분이지만, 글쓰기를 좋아하셔셔서 의학적 지식이 필요한 대필작업에서 활동하시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강사나 기자, 명백한 직업을 가지고 계시면서 부업으로 책 쓰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대필이라는 이름과 접목시켜 원고의 전문성을 높이는 경우에 해당되겠네요. 미국에 체류중인 박사님들도 많이 계시고..
- 대필 작품 종류에 따라 중요한 포인트나, 작가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다른가요?
대필작품은 자신의 원고를 써내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의 책과 원고를 써드리는 일입니다. 따라서 비즈니스마인드나 대인상담능력, 에티켓 등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작가는 그저 츄리닝차림에 슬리퍼신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글 쓰고 싶을 때 글을 써도 됩니다. 하지만 대필작가는 상담도 해야하고 출판사 관계자와 기획회의도 열어야 하며 타인과의 협업, 의사소통의 기회가 많습니다. 따라서 비즈니스 매너나 태도 등도 매우 중요합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능력이 필수인 것 같으며, 특히 대인관계서비스에 가깝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만큼 시간약속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철저해야 합니다. 집필은 혼자하는 일이지만, 그 인터뷰와 원고 결과물은 결국 다른 전문가분들과 협업해야 할 때도 많기 때문에 소통능력이 필요한 것이죠. 작가의 태도나 자세가 원고작업에 있어서 작아 보이지만, 어쩌면 계약의 성사와 작품의 이미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 좋은 대필 작가가 되기 위한 요건은 뭘까요.
뻔한 이야기지만, 의지, 체력, 노력, 긍정적인 마인드와 성실한 태도 입니다. 대필작업은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노력도 마찬가지고요, 산처럼 큰 작업물 앞에서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도 필요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체력인데 글 쓰시는 분들이 일찍 늙어요. 생각과 고민이 많고, 생각외로 앉아서 글쓰기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술이나 담배 대신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필작가’라는 직업이 지금 과도기인 것은 맞지만. 직업란에 ‘대필작가’라고 당당히 쓸 수 있는 자부심이 없다면 대필작가를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대필 작가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대필작가란 종합예술가이며 기획자이며 실용적 글쓰기 전문가입니다. 앤디워홀은 돈 버는 것도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분업화된 예술공장을 차려서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작품을 찍어내듯 생산하여 판매하였습니다. 대필작가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원고대필은 분업화된 과정의 일부이며 대필작가는 여기서 핵심적 역할을 하며 돈을 버는 것입니다. 대신 원저자의 이름을 높여주는 과정인 것이죠. 내가 못하는 일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당연한 이치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서 자동차학과에 들어가 4년간 자동차이론과 기계역학을 배워야 한다면 얼마나 부질없는 짓 입니까.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내가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에 다시 들어가 4년간 공부할 이유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대필작가협회>
- 과거 진행하셨던 인터뷰에서는 “대필작가를 범죄자로 보는 시선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쉬쉬하는, 음지의 직업”이라는 설명을 하셨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시선이 많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그런 시선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시대를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학력과 학벌이일생의 부와 직업을 책임져주는 산업화 시대가 아니니까요. 저는 처음부터 직업을 대필작가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뉴스나 미디어에도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놓고 대필작가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정말 많은 대필작가분들께서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반면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지금도 미디어에 얼굴을 드러내놓고 인터뷰하면 칭찬반, 욕반 입니다. 하지만 많은 대필작가분들이 저의 당당한 행동으로 인해서 숨지 않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필작가가 직업으로서 정착되는 과도기적인 시점이니까요.
- 일부 불법적인 대필 작업들이 보도되면서 안 좋은 시선을 받았던 것 아닌가 하는데요. 불법적인 대필 작업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도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 불법대필은 다양합니다. 논문, 법률, 공모전대필 등이 대부분입니다. 저도 제안을 받은적이 있으나 사실 실력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거절합니다. 사실 그런 분야를 쓸 능력이 없을뿐더러, 불법적 대필은 현재 법률로도 엄격히 규제받습니다. 법률문서대필은 변호사법위반, 논문은 업무방해죄등에 해당됩니다. 그밖에 어떤 불법적 대필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협회 내에서는 논문/ 사업계획서/ 법률문서 대필은 아예 못하도록 못 박았습니다.
- 대필작가 양성화, 표준화를 위해 2015년 협회를 만드셨다고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불공정문제를 주로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힘이 너무 부족해서 도와주시는 변호사/노무사 께도 죄송하더군요. 그러다가 한국예술인재단에서 이 부분을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단체로 이관하였습니다.
양성화의 핵심은 계약서, 세금입니다. 대필은 대부분 현금으로 주고 받는데 관행인데 저는 사업자등록을 다하고 세금도 냈습니다. 세금계산서도 발행해줬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거 같지만, 당시 정서로는 이해 안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표준화는 지금도 고민합니다. 변호사 자문을 받아 대필에 대한 대필작가협회의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고, 민간자격증 등록도 하였습니다. 결과와 수준의 표준화는 불가능하므로 대필절차와 계약절차의 표준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 협회 소속 작가는 얼마나 되고, 어떤 분들이 소속되어 계신가요.
현재 기준으로 약 500여명정도입니다. 문단작가/번역작가는 물론 시나리오작가, 웹소설작가, 방송작가출신분들도 계십니다. 대부분 한국에 거주중이시나 일부는 미국/유럽/일본에 거주중이십니다. 과거 베스트셀러 작가분들도 계십니다. 위에서 말한 전문직이시면서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메인잡을 가지고 서브잡으로 대필작가를 하시는 케이스죠.
대필작가님들이 어디서 백수처럼 놀다가 대필일감만 떨어지기를 대기하시는 분들은 한명도 안 계십니다. 창작이면 창작, 집필이면 집필 다들 자기 전문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들이기에 대필작업이 생겼다고 언제든지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 간혹 어설픈 대필로 인해 좋은 결과물을 얻지 못한 소비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필 작가의 능력에 대한 보증과 변별력이 없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협회의 ‘인증관리제도’가 이를 개선하는 역할을 하고 있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직까지 인증관리제도는 개선역할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와 역할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필작가 1급, 2급 민간자격으로 이 부분을 보완해나갈 예정입니다. 가장 정확한 것은 협회를 통한 대필작업입니다. 집필업무를 활발하게 하면서 작가님들의 실무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된 작가님이 참여하시기 때문에 한국대필작가협회를 통해서 책쓰기 대필이나 각종 대필등을 진행하면 작가의 수준, 결과가 확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필로 인해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과정은 점차 현실화될 것 같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이 인증관리제도 같은 사업도 탄력을 받아 세련된 방식으로 적용되어 실질적 개선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1) 해외 네트워크 및 지부설립
위에 언급한 협회의 표준화된 대필업무를 중심으로 점차 자격인증, 민간자격증제도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그리고 향후 북미권-유럽권 대필작가협회를 만들 생각입니다. 코로나이전에 해외거주 한인 작가님들과 연락되어 이전에 논의가 있었는데, 코로나사태를 만나고 올스톱이 되었습니다. 선진적인 대필문화를 가진 북미권, 유럽권 대필문화, 방식을 한국에 도입하는 것이 한국의 대필문화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보다 빠를 것 같기 때문입니다.
2) 작가/크리에이터를 위한 협회사무실
또한 적당한 사이즈의 사무실을 빌려 1인 작가, 1인크리에이터 집필작가(웹소설가, 유튜브크리에이터, 대필작가, 웹툰작가, 번역가, 프리랜서 기자…등등)등이 모여 일할 수 있는 업무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사무실 없이 7년간 집과 도서관에서 일했습니다. 집에서 일하는것도 좋지만, 작업의 제약이 너무나 크며 사회적 고립 감을 심하게 느꼈고 우울감등 정신적인 고통을 심각하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집에 아이들이라도 있으면 집은 작업공간이 될 수 없습니다. 대필작가, 크리에이터들이 하는 일이 교과서 밖의 직업이고 기존에 없었던 직업이기 때문에 직업적 정체성의 고민은 물론이거니와 혼자 동 떨어져 있을수록 외롭고, 힘듭니다. 어렵고 힘든 일은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크리에이터, 작가들이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작가를 위한 작가 오피스를 운영해보고자 하는데 코로나로 5인이상 집합금지가 일상화되면 힘들겠지만 백신 등에 의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전문화를 통해 청와대까지
마지막으로 ‘대필작가’를 직업군으로 정식 직업적 카테고리를 만드는 일이 협회의 포커스인데, 빨간 머리띠 두르고 “대필작가를 인정하라!”는 방식의 언더그라운드의 투쟁적 스탠스를 취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할명수’ 에피소드에 나갔던 것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스탠스로 지금의 대필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즐거운 과정과 특권을 즐기고 싶습니다. 우리 대필작가협회가 확실한 원고집필방식으로 꾸준한 성장하고, 협회 내 대필작가로 자리매김하는 작가님들이 계속 나오면 자연스레 대필작가는 하지 말라고 해도 직업 군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협회내 저보다 월등히 뛰어나신 대필작가님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조직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목표는 ‘청와대’까지 진출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집필작가를 최고의 작가로 여깁니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실력과 합법성,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과 영향력을 계속 쌓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필작가의 과도기적 시기입니다. 과도기는 과도기만의 찬스와 재미가 있습니다. 사회구석구석 분야를 심층 있게 종횡무진 누비는 재미는 대필작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기 때문에 저와 협회의 대필작가님들은 정식직업으로 자리매김되어 굳어지고, 경쟁이 심화되기 전에 지금처럼 이런 과정을 더 즐기려고 합니다.